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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기록/W.

상견례, 경복궁 압구정

by 잉슈슈 2023.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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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그리고 결혼 후에는 결혼 후의 삶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라고 핑계를 댄다) 상견례를 한지 1년이 지나서야 다시 기억을 되살려본다.

상견례 장소를 찾으면서 여러 후기들을 보았으나, 대부분 긴장되고 떨려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사진들도 한두장 뿐이었다. 블로그들 보면서 '나는 음식 하나하나 조목조목 찍어보겠어' 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상견례 당일이 되어서 깨달았다. 음, 한두 장 찍는 것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한 거였구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기지 못했고, 그래서 이 게시글은 경복궁 압구정의 공식 사진을 제외하면 그저 글 뿐인 후기 글이 되었다. (정말 카메라를 켜서 찍으신 분들 대단하고 존경합니다.)

 

상견례 위치 선정


양가 부모님 모두 서울에 거주하셨기 때문에 크게 생각하면 한쪽 부모님이라도 지방에 사시는 상황에 비하면 수월한 위치 선정이었다. 그저 서울 중 어느 한 곳이었으면 되니까. 서울이라면 사실 차로 1시간이면 어느 정도 이동할 수 있는 거리니까.

그럼에도 서울에 있는 수많은 식당 중 어느 곳을 하느냐로 몇 주를 고민한 것 같다. 특히 음식에 진심인 우리 엄마 기준을 맞추자니 마음에 드는 식당이 없었다.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정식 중 음식 구성과 국산 재료 사용 여부에 예민한 엄마였고, 지하가 아닌, 그러나 상견례 분위기가 가능하면서 상견례 하는 손님들을 많이 받아서 익숙한 곳을 찾고 싶었다.

근데 뭐, 쉽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 포기하지 않으면 가게를 차리는게 빠를 것 같았다.

서울에 있는 식당이라고 해도 위치도 참 고민이 되었다. 우리는 양쪽 집의 중간 쯤을 생각하면 서울역, 종로, 명동, 강남, 압구정, 잠실 정도였는데 서울역 종로 명동 강남은 너무 붐빌 것 같았고 잠실은 양쪽 집 모두 좀 빙 도는 느낌이 들고.. 그나마 압구정 근처인데 가격 대비 구성이나 퀄리티가 의심이 되고.

별 걱정과 고민을 다하고 참 깐깐하고 부정적이고 답답해 보이는데, 사실 나는 뭐든 맛있게 잘 먹을 자신이 있은 먹깨비이다. 그저 양쪽 부모님을 모시는 첫인상과 같은 자리가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떤 곳이든 선뜻 예약하지 못했던 것.

고민하고 고민하다 서울에서 무난하게 하는 상견례 공식 장소라고 들리던 체인점인 경복궁, 위치는 압구정으로 정했다.

말수가 적고 숫기도 없는 나와 오빠, 양쪽 부모님 모두 처음 보는 어색한 자리에 전문가 분들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았다. 모든 재료가 국내산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고춧가루가 국내산인 곳이었으면 했다(엄마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 지하였지만 이 부분은 포기했다.

사람들이 상견례 장소로 대부분 가는 곳이니 이유가 있겠지 싶어 믿고 예약했다. 예약은 필수였고, 예약금으로 5만원을 지불했다.

 

메뉴 선정


메뉴판만 봐도 수많은 사람들이 상견례를 치뤘을 것이라고 느껴진 이유는 메뉴 중에 "상견례 한정식" 코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음식을 대접하려는 마음으로는 7만원이 아니라 10만원도 20만원도 아깝지 않지만, 양가 부모님과 우리 둘 총 6명의 식사라고 생각하면 42만원이다.

가격을 아끼고자 6만원짜리를 할까 했는데 오빠네 가족은 생선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어 생선류가 아닌 메뉴를 하나라도 더 늘리고 싶어 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프리미엄 한정식의 양념갈비구이와 다른 코스의 갈비찜에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해 그냥 상견례 한정식으로 결정했다. 


상견례 끝나고 나서의 후기로 남기자면, 음식 맛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했다.
특별히 엄청 맛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메뉴는 없었고 무난한 맛이었다. 양쪽 부모님 모두 음식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없으셨다. 사실 막 맛있게 드시지 않고 먹을 것 없는데 억지로 드시는 느낌이었다 😭 역시 우리 엄마는 불만족...
그래도 엄마가 "사돈 될 분들 인사하러 간거지, 뭐 밥 먹으러 간거냐 - 됐다, 잘했다 - " 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줘서 잊어버렸다. 그래, 어머님 아버님도 자리가 불편해서 편히 못 드신 걸지도 몰라 라고 좋은게 좋은거다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이미 지나버린 거 뭐....

그래도 만약 다시 할 일이 생긴다면(그러면 안되지, 그럴 일 없지만....)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꼭 한정식을 고집하지 않고, 꼭 상견례로 유명한 집을 찾지 않고, 적당한 코스 요리가 나오는 룸 형식의 식당을 찾을 것 같다. 돈도 10만 - 15만 사이라도 기꺼이 낼 것 같다.

 

서비스


장단점이 있었던 것 같다.

장점으로는, 역시 상견례에 대한 경험이 많은 서버분이 오셔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신다. 예신님 예랑님, 사돈 어른 분들 이라는 단어들을 자연스레 쓰시면서 안내 및 서빙을 해주시는데, 그 경험이 느껴졌다. 자연스러운 축하 멘트 👏👏
그리고 한 집당 1병씩 예쁘게 라벨링 된 백세주를 2병 준비해서 주신다. 마지막에 손글씨로 적으신 축하 카드까지 -
축하 받는 기분 참 좋다.

단점으로는, 예약한 시간에 우리 말고도 상견례 오신 가족들이 많아 상견례 가족 복붙, 상견례 공장의 느낌이 살짝 난다.
너무 바쁘셔서 마지막 식사, 후식이 엄청 늦게 나왔던 것도 아쉬웠다. 부모님들 할 얘깃거리는 점점 떨어져 가는데 식사는 안나와서 자리가 끝이 안나고, 두세 번 밖에 나가서 음식 좀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는데 식사가 40분이 넘게 안 나오고 후식도 요청드린 후로도 수십분이 지나서 나오고.. 엄마 말로는 결국에는 아무말이나 일단 하고 봤던 것 같다고 '-'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민감한 질문이나 얘기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잘 끝났다.
오빠네 부모님은 원래 "알아서 해라-" 하고 믿고 맡겨주시는 느낌이셨고, 우리 부모님께도 "그냥 알아서 할 거니까, 이것 저것 신경쓰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었다. 예물 예단 전부 간소화하는 결혼식을 원한다고 서운하시지 않도록 미리 잘 말씀드렸기 때문에 식사하면서도 편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정도의 대화가 이어졌었다. 우리 둘다 나이가 좀 있고, 연애 기간도 길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많이 따지지 않고 반겨주시는 느낌도 있었다.

애교 선물이라고 해서 상견례 때 선물을 준비한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것도 과감히 생략.
처음에는 열심히 찾아봤는데, 찾으면 찾을수록 눈이 높아져서 가격대가 점점 높아졌었다. 모든 걸 간소화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첫 모임부터 큰돈 들여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듯 했다.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보답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잘해드려야지' 라는 생각을 되새기면서 선물은 패스했다. 다행히 양쪽 부모님 모두 속마음을 알아주셨는지 선물 없이도 (어색하지만) 즐거운 분위기에서 잘 마칠 수 있었다.

상견례에서 가장 좋은 준비물은 어떠한 상황에도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멘탈과 순발력, 그리고 생글생글 웃는 미소가 최고인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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